함께 사는 이야기-길을 거닐며 / 하승희(대구광역시 중구)

함께 사는 이야기(상세내용 하단 참조)

안녕하십니까. 저는 부모님과 1급의 시각장애인 오빠와 함께 살고 있는 정안인 입니다. 평소에 시간이 되면 저는 오빠와 함께 운동 삼아 길거리를 거닐기도 하고, 어딘가로 갈 때는 오빠를 데려다 주기 위해서 길거리를 거닐었습니다.

이 글은 그 때 시각장애인인 오빠와 함께 어딘가로 가기위해 지나게 되는 ‘길’의 느낌과 저의 마음이 담긴 것입니다.

평소 오빠와 함께 가지 않은 길을 갈 때는 그냥 ‘바삐 움직이는 무리들과 차들이 지나다니는 길’,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지나치는 공간’, ‘공기가 차네’, ‘날씨가 좋네’, ‘사람이 많네’, ‘사람이 적네’ 정도의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빠와 함께 걸어가는 길은 사뭇 달랐습니다. 핸드폰에 집중하고 있어 앞을 보지 않고 지나가며 어깨를 치는 사람, 길을 가다가 무심코 잊어버린 것을 찾으려 급 멈추었다가 한 바퀴 돌아 부딪힐 듯 마주하게 되는 사람, 터덜터덜 물건을 담고 지나가는 시장 리어카로 치고 가는 사람, 삐익 하고 굉음을 내며 쌩하고 지나가는 자전거, 좁은 골목길로 우회전을 하느라 빠르게 커브를 돌아 들어오는 차, 곧게 뻗은 길 끝에 이질적으로 만들어진 사선의 신호등, 매 사거리 마다 달라지기도 하는 신호 순서, 미처 남은 한 개의 계단을 보지 못해 쿵 하고 떨어지는 느낌이 드는 울퉁불퉁한 길, 가려고 했던 길이 공사현장이 되어 돌아가야 하거나 도로로 지나가야 하는 등의 상황을 만났고, 그것은 저에게 순간순간의 긴장감으로 다가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 않아도, 다양한 곳으로 다니지 않아도 보이는 사람들과 물건들과 지형들이 다 방해물이 되고 저를 긴장하게 만드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길을 거닐던 때에 가장 긴장하고 있었던 사람은 아마도 저의 오빠일 것입니다.

직접 많은 경험들은 하지 않았지만 오빠가 떨어질까 봐 혹은 부딪힐까봐 걱정하고 긴장하는 순간에서 제가 없었을 때 길을 다녀야 하는 오빠의 마음이 어땠을지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길을 다니며 누군가와 부딪히는 일들이 가끔 느끼는 기분 상하는 경험들이 아니라 너무 일상적으로 자주 경험하는 일들이라는 것이 너무 답답하면서도 기분이 상했습니다.

제가 혼자 걸었던 그 길에서 만난 자기의 길을 바삐 지나치던 사람들은 오빠와 제가 함께 가던 길에서는 가끔은 부딪히는 사람이 되고, 가끔은 길을 막는 사람들이 되고, 가끔은 밀치는 사람이 되어서 저희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목적지를 향해 가던 자전거들과 차들은 갑자기 옆에서 뒤에서 앞에서 나타나 저희를 놀라게 하는 것이 되어서 저의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무얼 하나 흘낏 보고 지나쳤던 홍보를 위한 각종 간판과 패널들은 가는 길을 막는 장애물이 되어서 나타났습니다.

제가 혼자 있었을 때 느꼈던 감정과는 다른 감정을 오빠와 함께 걸으면서 느꼈고 제 생각보다 훨씬 더 놀랍고 두려운 곳이 ‘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걸어가는 속도가 훨씬 느리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 길을 오빠와 함께 다니고 듣고 생각하고 나니 제가 혼자 걸었을 때 재빨리 걸어 다니지 않았는가, 주변의 사람들을 돌아보았던가? 하고 생각이 되기도 했습니다. 천천히 걸으며 부딪히지 않게끔 먼저 비켜주며 걸어가는 습관도 들이고 오빠와 같은 지팡이를 들고 다니시는 분들이 도움을 요청하시면 ‘꼭 도와드려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천천히 걸으며 조심히 발을 떼시는 분들을 위해 조금 천천히 그리고 배려하며 걷는 것도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