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다리 밑의 봉선화를 아시나요 - 조재훈(시각1급_서울특별시 종로구)

내가 실명한 지 몇 해 안 되는 1965년 경의 일이었다. 어떤 중년 남자가 길을 걷는 내 앞을 막아서면서 “봉사님”이라고 하였다. “봉사님이라니?” 나는 목청을 돋우며 화를 내고 있었다. 나를 놀리는 소리로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나를 정중하게 대해주며 물러서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봉사님 봉선화집을 아시나요?”하고 간절하게 물었다.

그 사람의 말씨와 음성이 너무 정중하였기에 나는 더 이상 화를 낼 수 없었다. 그래서 걸음을 잠시 멈추고 그 사람의 말을 듣게 되었다.

그 사연인 즉 자기는 부산에 피난을 하였을 때 가족과 헤어져 절망에 빠졌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점으로 유명했던 영도다리 밑의 봉선화집이라는 복술원을 찾아가 점을 쳐서 헤어졌던 가족을 만나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니까 봉선화집은 점집이었던 것이다. 점의 효과가 얼마나 영험하였는지 시각장애인을 “봉사님”으로 부르게 만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