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그컵 얼룩을 닦은 날 -
이성희(시각1급_서울특별시 용산구)

한 해가 저물고 어김없이 새로운 달력을 폈다. 펴기가 무섭게 며칠이 아주 재게도 지나갔다. 한겨울 용하게도 맨살을 찾아 그 독한 한기로 그 여린 곳을 때리고 잡을 새도 없이 지나가버리는 바람처럼 말이다.

이 맘 때 가끔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내 삶을 리셋할 수 있는 버튼이 있었으면 하고 말이다. 내가 이랬으면 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돌려 볼까 하면 지나온 삶의 흔적들이 그 마음 내게 허락지 않는 것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하얀 머그컵에 얼룩이 낀 것을 본 지가 꽤 되었다. 처음 사왔을 때의 깨끗함을 보면서 느꼈던 그 마음을 얼룩을 볼 때마다 떠올렸던 것 같다. 천성이 게으르다 보니 미루고 미뤘다.

오늘 아침, 여느 때처럼 커피를 마시고 우연히 그 머그컵을 보게 되었다. 여전히 얼룩이 져 있었고 전보다 얼룩은 더 퍼져 있었다. 새 해의 날들이 더 달아나기 전에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조바심이 일었다. ‘우선 이 컵부터 닦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