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사는 이야기-천사는 천사다웠으면

함께 사는 이야기(상세내용 하단 참조)

천사는 천사다웠으면

조재훈(서울특별시 종로구)

나는 서울 맹학교를 독립문 근처에서 다닌 적이 있었다.
그런데 효자동 쪽의 맹학교는 도심에 있으면서도 구석진 곳이라 교통이 불편하였다.
대중교통으로 버스와 전차가 있었으나 모두 효자동에서 원효로 방면으로만 운행하였다.
전차는 거의 기억에서 사라질 정도로 오래 전의 교통망이었는데 일반 차량들이 계속 운행되는 한길 복판에 설치된 레일 위를 다니기 때문에 시각장애인들이 타고 내리기에 아주 위험하였다.
그래서 주로 버스를 타게 되었다.
그런데 노선이 단순하다 보니 배차시간이 더딜 뿐 아니라 환승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효자동 차를 갈아타는 정거장은 서울역에 있었다.
그런데 제 자리에서 타지 못하고 상당한 거리의 차도를 건너다녀야 했다.
그렇게 위험한 길을 건너 원하는 차에 오르면 무작정 차장에게 밀려나게 되었다.
차장의 부당함에 멱살잡이를 몇 번 한 뒤 그야말로 내가 찍힌 모양이었다.

그때는 버스의 앞문과 뒷문에 차장이 근무하고 있었다.
'왜 경찰에게 고발하지 못했느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때는 승차거부에 대한 교통법규도 모를 뿐 아니라 경찰 역시 장애인에게 그렇게 우호적이지 못 하였다.
아니 장애인은 그렇게 차별을 당하는 것이 당연한 일로 여기고 있었다.

어느 차나 만원이라 사람이 짐짝 취급을 당하는 것이 보통이고 차장 또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하나의 권리처럼 되어 있었다.
그래서 완력이 약한 여 차장이 있는 앞문을 골라 타야 하는데 그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기 시작한 것은 아무래도 <88 장애인올림픽>이 있은 뒤부터라야 할 것이다.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 하여 유교사상이 배어있는 사람들은 탄생시의 몸을 그대로 지니지 못하고 장애를 가지게 된 것을 불효로 여기는 수가 많았다.

'병신자식 고운데 없다.'란 속담도 있다.
얼마나 가혹한 말인가?
그러나 역사를 보면 세상은 갖추어진 사람들에 의하여 발전하게 된 것이 아니라, 덜 갖추어져 고통 받고 인내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완성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서양 최초의 서사시인인 호머도 시각장애인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위대하신 세종대왕께서도 시각장애인이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또 우리나라 식품사에 빼놓을 수 없는 약과, 약식, 약주를 만든 사람도 서약봉 정승의 어머니인 이씨부인으로 시각장애인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이씨 부인은 이퇴계 선생님이 중매를 섰던 것으로 더 유명하다.
거기에 사람은 늙으면 누구나 한 두 가지 이상 장애를 가지고 지내다가 사망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왜 그렇게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심하였을까?
종교의 이념이 잘못 인식되었기 때문이었을까?
외신을 통해 이슬람권의 여성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남의 말 같지가 않다.
요즘처럼 자유롭고 모든 것이 개방되어 있는 세상인데 말이다.

하기야 그러한 차별을 당하는 입장에서 보면 고통스럽지만 모든 것이 평균화 되어 있다면 세상은 너무 단조로울지 모른다.
따라서 궤변 같지만 사람들의 흥밋거리를 위해 이러한 다양성은 필요하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이러한 자극들이 동력이 되어 세상은 발전해나가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그 어려웠던 과거 때문에 개선된 오늘의 복지를 더 값지게 느낄 수 있는지도 모른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지금의 장애인복지를 묻는다면 과연 그 가치에 만족하고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니까.

서울시장님께서 시각장애인들에게 전철역에 안내봉사자를 내보낼 것이라고 하여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사실이었다.
얼마나 고맙던지! 정말 천사를 보내주었다고 여길 정도였다.

지옥철 같다는 땅굴 속의 굉음 가운데서 헤매던 그 공포! 그 안내인들은 자기를 자원봉사자라고 했다.
그런데 자원봉사자 치고는 너무 서투른 데가 많았다.
대개 자원봉사자들은 친절할 뿐 아니라 일에도 능숙한 편이다.
그러나 이 분들은 그렇지 못하였다.
대기하기로 한 곳에 나오지 않을 뿐 아니라 차를 잘못 태워줄 때도 있었다.

시각장애인들의 안내를 위해서는 팔꿈치를 내놓는 게 기본인데 그것도 모르는 봉사자가 많았다.
그래서 그 속을 들여다보니 자원봉사자가 아니라 노인 실업자들의 생활대책을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품삯도 최저임금보다는 나은 편이었다.
장애인들에게는 좋은 안내자가 되어 외출도 편하게 해주고 노인 실업자들에게는 작으나마 생활대책이 되니 일거양득이라고 할까?
거기에 지하철 안전사고까지 방지할 수 있으니 일거삼득이 되는 일이라 해도 무방하겠다.

시민들의 귀한 세금을 써서 하는 일이니 보다 좋은 결과를 보게 되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기왕이면 예산을 조금 더 들여서라도 안내인은 맡은 일을 익숙하게 하도록 훈련을 시켰으면 좋겠다.

역시 봉사자는 봉사자다워야 하겠다.
그러면 안내자가 천사가 되지 않겠는가?
이렇게 되면 서울 시정도 한층 신뢰가 쌓이게 될 것이고 시장님의 업적도 한층 빛나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모처럼 만나게 된 천사, 정말 천사는 천사다웠으면 하는 생각이다.